[책리뷰]마흔에 읽는 니체(최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2023. 2. 25. 21:06일상/책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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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퍼런스) 최근 '마흔에 읽는 니체'를 읽었다. 예전에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라는 책을 아주 재밌게 읽었고 그 뒤로 니체를 좋아하게 됐다. 기독교인은 니체를 멀리해야 한다는 편견이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오히려 반대로 생각한다. 성숙한 기독교인이라면 니체를 가까이하고 니체와 신에 대해, 인생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토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마흔에 읽는 니체 소제목 1~4장의 내용을 줄이고 그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하는 대화 방식으로 책 리뷰와 정리를 하고자 한다.
 
1장, 2장을 먼저 읽고 싶다면 다음을 참고하길
2023.02.25 - [일상/책 리뷰] - [책리뷰]마흔에 읽는 니체(1장. 마흔, 무엇으로 사는가)
2023.02.25 - [분류 전체보기] - [책리뷰]마흔에 읽는 니체(2장. 왜 자기 자신을 찾아야 하는가)
 

3장 어떻게 인생을 여행할 것인가

 
책내용 1: 자유정신을 찾기 위한 과정은 무엇일까? 과거에는 미덕이 주인이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 '겸손하라', '거짓말 하지 마라' 등의 미덕이 절대적 가치로서 나의 주인이였다. 니체는 그 가치들의 절대성을 부인한다. 모든 가치 평가의 기준은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 어떤 미덕을 자기 삶의 방식과 관점에 따라 다르게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 나는 이 내용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한다. 언뜻 보기에는 기독교의 교리나 가치를 깎아 내리는 내용 같지만 그렇지 않다. 나를 포함한 많은 기독교인은 성경에서 말하고자 하는 진리들을 소화하지 않고 남발한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 - 내 안에 사랑이 없는데 그런 척한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 사실 내 욕심이 더 크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가 무엇인지 조차 모르는데 내 욕심을 잘 포장해서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척한다. 이런 모습들이 쌓이고 쌓여 니체의 말은 옳은 말이 됐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복음 위에 쌓아야 한다. 그리고 말씀이 진짜 내 믿음이 되어야 하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
 
(마태복음 7장 21절)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책내용 2:
※고귀한 인간: 강자, 지배자, 건강한 자, 귀족적 인간
  ①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존중: 셀프 외경심(외경심: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
  ② 허영심은 실속 없다고 생각, 버려야 할 것
  ③ '건강한 이기심' - 자신의 잇속만 챙기는 편협한 마음  X,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

※ 비천한 인간: 약자, 피지배자, 병든 자, 
  ① 스스로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함. 자기혐오와 자기 비난
  ② 낮은 자존감. 타인으로부터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 함
고귀한인간이 되려면 깊은 고뇌를 하고 '거리의 파토스' 개념을 이해하고 적용하라
→ 대충 비천한 인간보다 고귀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말임. 좀 어려웠음


책내용 3: 니체는 글을 쓰는 자신을 사랑했다. 단순히 지식과 정보전달만 하는 남을 위한 글을 쓰지 말고 나를 위한 글을 써라. 스스로 사상가가 되어야 한다.
→ 블로그 글을 쓰는 것을 지속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뒤에 나오는 아폴론 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 예술?... 사실 3장은 어려웠다.
그래서 바로 4장까지 책리뷰를 진행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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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어떻게 이 삶을 사랑할 것인가

 
책내용 1:
우리의 삶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채워지지 않는 욕망 때문이다. 고통에서 해방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① 고통을 정면으로 응시하라
    -니체는 고통스러운 삶 자체를 적극적으로 긍정한다. 고통은 단지 회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므로 직면할 것을 요구한다.

② 단순한 삶을 추구하라

③ 고통을 열망으로 바꾸어라
    - 고통과 고뇌는 외부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만들어진다. 나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고통을 추구할 때 그 고통으로 인해 창조적 역량이 더 세련된다. 외롭고 고통스러울수록 내면의 그림자와 대화하라.

④ 고통에 대한 처방은 고통이다
    - 기독교 입장에서 인간의 고통의 원인은 아담이 지은 원죄 때문이다. 영원한 구원을 받기 위해 모든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다.(?? 니체 또는 이 책의 저자가 복음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지 모르겠음) 하지만 니체는 죄책감을 조장하는 금욕주의의 치료법으로 인간은 길들여지고 약해지고 용기를 잃게 되었다고 말한다. 니체가 말하고자 하는 건 욕망에 솔직해지고 그런 나를 경멸하지 마라. 우리는 끊임없이 욕망하고 그러 수록 우리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긍정적인 욕망도 중요하다.
→ 조금 어려울 뻔했는데 '고통 = 욕망'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읽으면 이해가 된다. 여기서도 니체가 '신은 죽었다'라고 말한 이유가 나온다. 니체는 인간이 끊임없이 직면하고 극복하길 바란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내 내면의 욕망에 솔직해지는 것을 바란다. 나는 3장에 나온 '건강한 이기심'을 잘 해석해서 건강하게 노력하고 성취하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거라고 이해했다.
 

책내용 2: '고독' 자기 자신을 찾는 여행. 내면의 나와 만나기 위해서는 '무리 본능'에서 벗어나 고독한 길을 가야 한다. 고독을 통해 내면의 소리를 들어라
→ 오늘 책리뷰 포스팅만 3편을 썼는데 그럴 수 있었던 이유가 내가 아파서 와이프 혼자 교회에 갔기 때문이다. 나는 고독을 통해 글을 썼고 어쩌면 그걸 통해 나를 찾는 여행을 잠깐 떠난 게 아닐까 ㅋㅋㅋㅋ
 
 
책내용 3: 
<지배하는 자와 지배받는 자의 생각>
1. 노예 도덕: 지배받는 자, 노예들의 생각
   - 주인 도덕을 호의적인 시선으로 보지 않고 증오한다.
   - 자신에게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강자였던 지배자에게 반감을 가진다.
   - 결국 그들을 '악한 인간'으로 규정하고 이와 대조적으로 자신을 '선한 인간'이라고 규정한다.
   - 약자는 무조건 '선'이고, 자기보다 강한 지배자는 모두 '악'으로 규정한다.
   - 가치를 정립하는 시선을 자신이 아닌 외부에 둔다.
노예적 사고방식에서 선한 인간이 되려면 '위험하지 않은 인간'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그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잘 나가는 부자들을 바라볼 때 상대적 박탈감과 열등감을 느낀다. 노예도덕에 빠져있는 사람은 자신의 열등감을 스스로 극복하지 못하고, 단순히 나보다 잘난 사람들을 부정하거나 비난하기만 한다.
 
2. 주인 도덕: 지배자의 도덕
   - '좋음'이 무엇인지를 지배자가 스스로 결정한다.
   - 자신에게 긍지와 자부심을 느낀다.
★ 니체는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창조하는 자가 아니라면 그 누구도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 지를 모른다!". 고귀한 인간은 자신을 '가치를 창조하는 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타인을 의식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 열등감이 있다. 문제는 자신의 열등감을 인생의 걸림돌로 보느냐, 아니면 성공의 발판으로 보느냐에 달려 있다.
→ 이 내용이 불편한가? 혹시 불편하다면 당신은 노예 도덕에 종속된 사람일 수도 있다. 그리고 나를 너무 욕하지 마라. 내가 아니라 니체가 한 말이고 장재형작가가 자신만의 언어로 옮겨 쓴 말이다. 지배자가 아닌 지배받는 자에 위치에 있는 것은 나쁜 게 아니다. 하지만 지배받는 위치에서 노예도덕으로 근거 없이 부자를 악으로 규정하고 매도하는 생각은 좋지 않다. 왜냐하면 자기도 모르게 자기의 가능성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느낄 필요가 없는 상대적 박탈감과 열등감 속에서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내 위치가 어떻든 노예 도덕 보다 주인 도덕을 가지고 살고 싶다.
 
 

개인적 고찰

그리고 이 글을 읽고 든 재밌는 생각이 있다. 니체는 창조하는 행동이 주체성을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방법으로 여긴다. 그런데 이 세상을 창조한 분이 누구인가? 바로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이 세상과 나를 창조했고 '창조'라는 행동 안에 신비한 진리를 담아 놓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니체는 그 '창조'에 담긴 신비한 진리를 발견한 것이다.

인간은 나약하기 때문에 삶의 고통으로부터 숨었고 니체는 강했기 때문에 직면했다. 나약한 인간은 기독교로 대피했고 강한 인간은 창조하면서 자신의 기준으로 삶을 판단하고 이겨나간다. 하지만 죄인이며 나약한 인간을 사랑으로 품어주시고 위로해 주시는 분이 있다. 바로 이 세상과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이다. 그리고 그분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를 연단시키시고 결국 강한 자로 세상에 나아가게 하신다. 니체가 스스로 도달할 수 있었던 그곳을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나아간다.
 
(잠언 17장 3절)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
시편 138편 3절) 내가 간구하는 날에 주께서 응답하시고 내 영혼에 힘을 주어 나를 강하게 하셨나이다
 
그리고 스스로 그 경지를 개척한 니체가 대단했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까웠다.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이루지 못하고 끝없는 신체적 고통 속에서 치열하게 삶에 대해 고민해 왔다. 결국 그는 엄청난 철학을 창조해 냈지만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니체에게 긍휼 한 마음이 든다. 그에게 위로와 함께 예수를 전하고 싶다. 우리 기독교인은 니체의 철학을 신학으로 이기면 안 된다. 그에게 공감하고 대화하고 예수를 보여주며 함께 해야 한다.
 
혹시 이 글을 읽고 니체가 궁금한 사람은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라는 책도 읽어보길 추천한다. 지금 내가 니체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이 책의 관점이 많이 묻어있다.
 
결론은, 예수님 안에서 세상을 직면하고 나아가자. 매일 1을 쌓는 삶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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